내가 인생에게 배운 몇 가지 요령 중 하나는
감정의 중도를 교묘하게 곡예하는 수법이
나와 타인에게 꽤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하루만 지나도 아무 의미가 없는 어설픈 다툼과 자존심.
그 댓가로 소모되는 흔들림이 너무 부질없다 여겼는지도.

이런 내게 언제나 감정의 끝에서 격렬하게 반응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은 색다른 체험을 안겨준다.

뭔 말들은 이리도 많은지 ...
언뜻 보면 이 사람 제대로 미쳤군,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스킬을 구사하는 클랜만 가득하다면
문제의 제기도, 해결도 기대할 수 없을테니 다 마주치고 볶아대야 하겠지.

미쉬낀 공작보다 나스따시야 필립뽀브나의 말과 행동이,
이뽈리뜨의 고백보다 그후의 소동에 대한 쓴 웃음이 마음에 들어와 앉는 편이었다.

훗날 다시 보게 된다면 어떤 인물이,
어떤 사물이 들어와 앉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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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서울행.

미리 도착한 덕에 홍대 앞 KFC 바위에 앉아
지하철에서 보기 시작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펼쳤다.

화창한 휴일,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이처럼 잔혹한 동화를 읽고 있는 등산복 차림의 아저씨라 ...

우습네.

수식과 감정을 배제한 간결한 문체의 흡입력은
우스운 꼴에도 그만큼 몰입도가 높았다.

1권의 '비밀노트'는 서울을 오가며 해치우고 이어지는 2권. 3권.

각 권은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 보아도 무리 없는 구조를 갖고 있으며
시차를 두고 발표된 세 작품은 하나의 제목에 묶는 데 무리가 있다는 역자의 말씀과 달리,
이 3부작은 3권까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며 뭉그적 쉬어볼까, 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편의를 제공하지 않았던 영화 '메멘토'의 기막힌 배치처럼,
보는 사람의 끊임없는 두뇌활동을 요구하는 의식의 도돌이표는 책 어디에나 찍혀 있었다.  

역시 3권의 이야기는 꼭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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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몫으로 참 많은 것을 넘겨주는 소설이다.

단순한 플롯과 명확한 전개로
짧지만 이처럼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프랑스판 표지라는데
소통할 수 있는 생명체,
소설 속 화자 그 안에서
인간처럼 여겨지는 것을 형상화했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이런 스타일은 어땠을까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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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종 가운데 20% 미만이 생태계 파괴 원인의 80% 이상을 제공한다.
지구상 3,000만종 가운데 오직 한 종(0.00000003%)이 전체 해악의 40%를 담당한다.

그 종이 어떤 종인가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 living the 80/20 way(리차드 코치) 중에서

그렇겠지.

아무 이유없이 같은 종족을 살해하는 지구상 유일한 종족.

침팬지와 98% 유전자가 똑같지만 2%가 다른 종족.

'발전'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자들에게 살해된 아마존의 열렬한 옹호자, 멘데스에게 바치는
이 짧은 소설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치과 의사의 걸죽한 입담을 빌려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을 질타하는가 하면,
아마존의 주인인 수아르 족의 삶의 지혜를 들려줌으로써
인간이 자연을 외면하는 한 결국은 모두가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준엄한 경고를 담고있다.



지구의 허파, 아마존.
아마존의 열대 우림은 지구 산소중에 25%를 생산하는데, 그 면적도 만만치 않아서
전세계 육지의 5%나 차지한다. 비행기를 타고 두세 시간 날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 아마존의 정글에서 외지인의 접촉을 피해 스스로 고립된 생활을 하는 인디오들.

5백년 전, 콜롬버스를 손님으로 맞이한 이래 1천만의 인디오는
고작 55만명 남짓한 수만 살아남게 되었다.

둥지에서 굴러 나가지 않아야 하기에
원이 아닌 타원형으로 생긴,
품기에 알맞게 모나지 않아야 하기에
네모지지 않고 타원형으로 생긴,
그런 생명의 원리를 담은 달걀을 다른 사람이 세울 수 없었던 것은
조류의 알은 애초에 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지.

그걸 깨부셔서 세운 콜럼버스.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으로 말머리를 돌려보면,

가톨릭을 믿는 농부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그의 아내 돌로레스 엔카르나시온 델 산티시모 사크라멘토 에스투피냔 오타발로와 함께
아마존을 개간하라는 정부의 정책으로 땅을 일구려 애쓰지만 될 턱이 없는 소리였다.

아마존의 주인, 수아르 족이 다 헛 일이라고 한데는 이유가 있었지.

제초를 해도 다음 날이면 허리만큼 풀이 올라와 있고,
우기가 지난 후 남은 씨앗을 뿌려보니 끊임없는 비에 씻겨 내린 바람에,
씨앗은 필요한 자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꽃도 피우기 전에 시든다.
그나마 살아남은 작물도 다음 우기에 접어들면서 첫 폭우와 함께 휩쓸린다.

수아르 족은 사냥하는 법, 물고기 잡는 법, 폭우에 견딜 수 있는 오두막을 짓는 법,
먹을 수 있는 과일을 고르는 법 등 밀림의 세계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기술을 전수해 준다.

지혜란 이런 것.

덕분에 수아르 족이 아닌 수아르 족.
밀림의 고수, 밀림의 셜록 홈즈가 된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는
밀림에서 자신의 자유를 만끽하며 노인이 되어갔다.

살해된 시체를 수아르 족에게 덮어 씌우는 뚱보 읍장.
그에 반론하는 노인의 '암살쾡이 추리'는 과학수사대 CSI를 떠오르게 하는 명장면이지만,
개인적으로 읽을 줄은 알아도 쓸 줄은 모르는 노인의 독서방식에 더 눈길이 갔다.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음절과 단어와 문장을 차례대로 반복하는 노인의 책읽기 방식은 특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장면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 때까지, 마침내 그 구절의 필요성이 스스로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캬~ 멋지다. 나도 언제 저렇게 읽을 시절이 있겠지.

'뜨거운 키스', '곤돌라', '베네치아'를 상상하는 노인의 생각과 감정은
'사과를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사과의 맛을 전해보시오'와 같았다.

글로 전하지 않고 사과를 건네 먹게 하면 알 것을 ...  

하지만, 지식 습득의 수단이 아닌 불입문자(
不立文字)의 지혜를 터득한 노인에게는
연애소설을 읽는 것이 늙음이라는 무서운 독에 대항하는 해독제이기도 하고,
글읽기가 주는 사유의 유희에도 그 몫은 충분하기에 아주 유쾌한 부분이다.

암살쾡이를 추적해 죽이고 눈물을 흘리는 노인은,
인간의 야만성을 잊게 하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연애소설이
기다리는 오두막을 그리워하며 끝이 나는데,
문자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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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와 컴퓨터가 사무실로 나간 덕분에
(걔네들이 가출한 건 아니지만)
잠자리에 들기까지 맘껏 책을 읽을 수 있어 흡족하다.

손 안에 작은 종이뭉치를 열면
내 방은 나를 더 멀리 실어간다.

블랙펄에서 미소짓는 잭 스패로우처럼 흐뭇한 나는
이곳저곳 안 날아다니는 곳이 없다.

하루종일 시달린 눈을 쉬려
불을 끄고 잠시 누워 되씹어 보니,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란
밤새 고른 시어처럼 기가 막힌 제목이다.

옛 이야기꾼부터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프로슈머까지,
인간이 살아가는 한 스토리 텔러의 영향력은 계속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저녁에는 남미쪽을 다녀와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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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미의 추구, 세밀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금각사'.

1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나오는 말더듬에 대한 묘사만 보고도
다른 작품은 어떤 것이 있는지, 뭐하던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이래저래 찾아보니 참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작가'라는 단어가 갖는 '평범'이라는 것에서 아예 거리가 먼)

일본이 낳은 기형적인 캐릭터, 미시마 유키오.
 
1925년, 일본 최고의 명문가에 태어나
귀족만 다닌다는 학습원 수석 졸업.
동경제국대 법학부 졸업. 대장성 취직.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촥촥 밟아주고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두 번이나 오른 작가.

이력만 보면 참 그럴 듯하다.

그러나 1970년 자위대 본부를 점거한 채
자위대의 총궐기와 일본의 재무장을 호소하면서
전통 무사식으로 할복자살해  
일본과 전 세계에 충격을 준 극우파.

-_-

'토토로'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극우파일 수 있는지,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경우에는 그저 표면적으로 놀라웠지만
미시마 유키오는 좀 다르게 느껴졌다.



유년시절, 타고난 허약체질로 육체적인 열등감에 시달렸던,
명문가의 그저그런 도련님이었나 보다.

30대에 들어가면서 보디빌딩, 검도, 승마등
남성적인 어떤 것에 심취하면서
슬렁슬렁 극우파가 되어가는데 ...
('금각사'는 보디빌딩을 시작한 그 즈음에 연재된 소설)





-_-

탐미주의자라메~ 이게 뭐니~
(금자야, 너 눈화장이 그게 뭐니~)



1969년 동경대 전공투와 800 대 1의 사상적 토론을 진행하는 장면이다.

극우파 미시마와 극좌파 전공투의 만남이 이뤄진 것도 신기하지만,
(양극단의 근본주의자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미시마를 원숭이라 조롱하며 비웃던, 전공투가 점거하고 있는 동경대 강의실에
혈혈단신 정신의 칼날을 세우고 들어간 미시마도 놀랍다.



이 토론은 '미시마 유키오 대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라는
책으로 출판되어 있는데 그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

관념어의 나열이고 크게 관심이 있는 분야가 아니라 주의를 기울여 정독할 필요를 못 느꼈지만,
당시 토론의 분위기와 미시마에 대해 좀더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이 냥반의 군국주의는 나름 탐미한 것인가 ...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미사마 유키오가 1925년 중국의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배곯고 자랐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도 생각해본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미시마 할복에 대한 글이 있다.
이게 생방으로 전 일본에 뿌려졌다구~?!

-_-

===================

미시마 유키오가 행한 할복 자살의 방법은, 오랜 기간 일본을 지배해 왔던 무사 정권의 사상적 기반인 무사도(武士道)에서 주군의 명령에는 생명을 바쳐 절대 복종하는 것을 영예로  여기며 무사들이 행하여 왔던 자살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미시마 유키오는 1967년(소화 42)에 자위대에 체험 입대하여 유격훈련과 같은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오랜 기간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연습을 한 후에, 그에게 무조건 충성을 맹세한 네 명의 동료들과 함께 [다테노카이 : 방패의 모임]를 정식으로 결성했다.

1970년(소화 45) 11월 25일 미시마 유키오는 그를 따르던 동료들인 [다테노카이]의 회원들과 함께 동경 한복판에 있는 자위대 총감부에 들어가, 총감을 꽁꽁 묶어 인질로 잡고 자위대 병사들에게, 일본 헌법 9조의 개정, 민족정신, 군인의 이상, 시대의 퇴폐 등에 대해서 호소했지만, 자위대 병사들은 무관심과 야유 그리고 놀림의 말로 그의 호소에 반응했다. 그는 일본 자위대 병사들에 대해 실망의 말을 마지막으로 외치고, [천황 폐하 만세]를 삼창한 뒤 총감실로 돌아왔다.

총감실로 돌아온 미시마 유키오는 상의의 단추를 풀어 상반신이 벌거숭이가 된 채 무릎을 꿇고, 몇 번이고 반복하여 연습한 대로 정좌를 앉았다. 그리고 단도를 쥐어 그 칼을 왼쪽 옆구리에 대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천황 폐하 만세]를 세 번 의식적으로 외치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얏" 하는 큰소리와 함께 단도로 왼쪽 배를 푹 찔렀다. 단도를 쥔 양손으로 배꼽 밑을 밀며 오른쪽 겨드랑이 쪽으로 칼을 밀어 나갔다. 모든 것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배를 절개해 나가는 순간, 미시마 유키오의 목을 자르기 위해 일본도를 번쩍 쳐들고 있던 모리타가 칼을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첫 번째 내려친 칼날은 모리타의 손의 떨림에 의해, 아직 살아 숨쉬며 배가 갈라지고 내장이 터져 고통스러워하는 미시마 유키오의 어깨에 깊은 상처만 냈을 뿐이었다. 모리타가 내려친 두 번째 칼날도 아직 살아 있는 미시마 유키오의 육체에 깊은 상처만 냈을 뿐이었다. 모리타가 내려친 세 번째 칼날이 간신히 미시마 유키오의 목을 몸통에서 떼어놓았다. 미시마 유키오의 잘려진 머리와 몸통의 격렬한 떨림이 멈춘 순간, 이번에는 모리타가 상의를 벗고 정좌하고 앉았다. 피투성이의 단도를 움켜지고 그가 순식간에 배를 가르자, 고가는 한칼에 그의 목을 내려친다. 남은 사람들이 막 잘려진 두 개의 머리를 줍고, 두 개의 몸통 옆에 서서 피비린내 나는 악취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죽은 사람들의 명복을 빌며 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왜 배를 가르며 몸통에서 머리가 잘려 나가는 할복 자살의 방법을 택했을까? 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리타가 내려친 한칼에 매끄럽게 몸이 몸통에서 떨어져 나가지 못했을 때의 미시마 유키오의 고통은 어떠했을까?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자살은 일본 국내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공포와 놀라움을 불러일으킨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어느 평론가는 [현대 일본 작가의 직업적인 고독과 고도로 폐쇄된 개인성을, 미시마 유키오는 집단적인 현실 속에서 극복하려고 했다 ]라고, 또 다른 평론가는 [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엘리트 코스를 달린 그의 눈에는, 동시대에 허우적거리며 사는 일본인들의 하는 짓이 너무나 시시해 보였기 때문에, 그런 속물들과 웃고 시시덕거리는 것이 무의미해 보였기 때문]이라는 논(論)도 있지만, 미시마 유키오가 생전에 말해 왔던 [일본 사람 이외는 할복 자살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한 말이 왠지 지금도 항상 가까이에서 메아리치고 있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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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은 단지 외모상의 문제가 아니야,라고 느껴지는 것은
내 나이가 30대 중반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상승곡선은 멈추고 이제 슬슬 하향곡선을 타야하는.
몸은 신호를 보낸다. 그짓은 이제 안돼~ 좀 그만 해줄래 ~ ?

무시하다가는 큰 코 다칠텐데 ...

의료비의 30~50%가 운동부족, 비만에서 나온다는 데
넌 딱히 벌어둔 것도 없잖아 -_-;;;

이제 뚱뚱하고 행복하던 시절도 안녕이군. 젠장~

예전에도 과도하게 무겁던 시절이 있었다.

양말을 신을 때 숨이 차고,
심장이 몸 안에 뛰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던 시절.

발톱을 깎다가 힘들어서
뭐가 이래 ~ ?!! 발끈 좌절했던.

더이상은 안되겠군.

술, 담배를 끊고 무작정 달렸다.
달리고 기어오르고 들고 나르고.
한 끼에 3분의 1공기를, 차 숟가락으로 한 입에 50번씩 씹으면서 삼켰다.

뭐랄까 ... 처음에는 술, 담배, 기름진 음식을 못하는 것,
땀을 한 바가지씩 쏟아가며 움직이는 것, 그 자체가 모두 고통스러웠다.

하여튼, 세상은 좋은 건 다 하지 말라고 한다니까 ... 젠장~

하지만 더이상 뚱보로 좌절하는 것은 안되겠기에 꾸준히 그 짓을 계속 했는데,
나중에는 서서히 그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쌀 맛이라고 해야할까...
적게 먹을수록 야채, 쌀, 그 본연의 맛을 음미하게 되었고,
한 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는 커피 한 잔이 그리 달콤했다.

운동이 주는 정신적 만족감.
살을 뺀다는 것보다 운동이 주는 평온함, 그 자체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 결과 6개월쯤 지나자 27kg정도의 감량을 했고,
요새 말하는 몸짱정도는 아니더라도
볼 만한 몸매에, 근본적인 생활태도까지도 변화가 온 듯 보여졌다.

그! 러! 나!

몇 년이 지난 나는, 다시 행복하던 시절의 뚱보가 되었다.
이것저것 먹어대고 마구 마셔댄다.

무절제한 술, 담배로 인해 대사 불균형 상태로 보여지고,
에너지 저장 탱크인 지방은 요새 같은 유가 불안정 시대에도 두둑히 안전하다.

이러다 큰 일 나겠어 ...

변화의 동기부여에 도움이 되고자 든 책이
요쉬카 피셔가 쓴 '나는 달린다'이다.

선택, 결정의 자유와 달리기의 매력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좋은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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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긴급출동 SOS'라는 TV프로를 보기도 했다.

일그러진 삶을 정상적인 궤도로 옮길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모습이 좋았고,
한 사람의 삶을 바꿔 놓을 수 있는 기능과 역할에 느낀 바가 많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보기가 싫어졌는데,
넘쳐나는 재연-고발 프로그램, 인터넷 기사 등으로 중계되는 타인의 고통,
그것을 그저 남의 손톱 밑 가시쯤으로 여기는 불쾌한 경험과 불편한 진실이 싫었기 때문일까 ...

나이가 들어가면서 답답하고 속상한 이야기는 피하는 편이 되었다.

영화보다 끔찍한 현실을 보기에도 충분하기에
공포영화 자체도 즐기지 않는 편이다.

영아 유기, 납치, 유아 방치, 스토킹, 폭력, 강간, 살인 등
백가흠의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는 만만하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열여섯에 시작한 동거로 아이를 낳는다.

이후 애아버지는 내뺐고,
그녀는 생활고에 시달린다.

스무 살의 그녀는 알바를 나갈 때,
아이를 반지하에 가둬둔다.

남자가 생겼다.
그녀는 스무 살이다.

아이에게 가는 날이 줄어든다.

아이가 지하에서 심심하지 말라고
강아지를 같이 가둬둔다.

강아지는 자란다.
아이는 네 살이다.
 
개가 되어간다.
아이는 네 살이다.

아이는 먹이를 차지할 능력이 없어 굶는다.
아이는 죽어 발견된다.

이쯤에서 망할 놈의 독자는 절정에 다다른다.
비참한 질문에 크게 물음표만 안은 셈이다.

팍팍하디 팍팍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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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습관이 있는데
그중 가장 깊은 울림을 준 영화라면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첫 손에 꼽을 수 있다.

인간의 모든 가치를 박탈당한 상태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인생은 아름다워'.

각본, 연출, 주연을 맡은 로베르토 베니니가
'인생은 아름다워'의 귀도만큼 멋진 남자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아마 니콜레타 브라스치도 크게 부인하지 않을 거라 짐작한다.
(귀도의 부인, 도라역을 맡은 니콜레타 브라스치는 로베르토의 실제 부인)

만화로써는 최초로 퓰리쳐상을 받은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참혹한 역사적 사실을 감정적이라기 보다 사실 자체에 포커스를 맞춰 담백하게 표현하는데,
만화이외에는 어떤 매체로도 묘사하기 힘든 서술방식에 크게 감탄하고 감동받았다.

그에 반해, 프랭클 박사의 아우슈비츠 체험은
나에겐 남들처럼 깊은 울림을 남기지 못했는데,
이미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많은 창작물을 접해서인지,
심리의학적 관점으로 서술되어 고통의 대리체험이 약해서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영상 세대라 그런가 -_-)

하지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은 정신요법 제 3학파,
'로고테라피'에 대해서는 흥미롭게 보았는데, 특히 역설의도 기법에 눈길이 갔다.

역설의도의 대표적인 예로 수면장애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경우를 보면,
불면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결국 어떻게든 잠을 자야겠다는 과도한 의욕을 갖게 하는데,
이것이 그 반대로 잠을 잘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
(불면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대개의 경우, 생물체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수면을 알아서 취한다는 사실을 환자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한다.)
반대로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해보면 잠을 자지 못할 것이라는 예기불안에서 벗어나
즉시 잠이 온다는 것.

글씨를 쓰려고 하면 손이 떨려서 고생하는 환자의 경우,
"내가 얼마나 글씨를 엉망으로 쓰는지 사람들한테 그대로 보여줄 테다"
말하면서 썼더니 손이 떨리는 증세도 호전되었다는 것.

예기불안(anticipatory anxiety), 과잉욕구(hyper-intention), 과잉투사(hyper-reflection)등에
대해서도 재밌게 보았다.
(암튼 인간들이란 요상한 심보를 ...)

니체 형님이 말씀하신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프랭클 형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독자성과 유일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창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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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첫째,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전해 책을 사는 고객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좋았고

둘째, '나'라는 브랜드와 회사에 대한 좋은 인식을 맘껏 홍보할 수 있어 좋았고

셋째, 책 판매로 인한 인세 전액은 불우청소년을 돕기 위한 기금으로 사용되니

책에서 말한 내용을 고대로 실현한 책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teacher가 아닌 helper 로서,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그것도 성공한 사업가로서
두런두런 들려주는 이야기가 들을 만 했다.

난 사무실을 나갈 때 주로 걸어가지만
택시를 탈 일이 있으면 '도우미 노래방이요'라고 말한다.
신영증권 건물이라고 말하면 이래저래 설명을 덧붙혀야 하고
부천의 모든 기사들은 '도우미 노래방'을 잘 알고 있으니 말하긴 웃겨도 그게 편하다.
간판을 기가 막히게 달아서 그런가 ... ?

당시 육일약국이 자리하고 있는 교방동은, 시내버스에서 내려서도 가파른 길을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변두리에 자리한 동네이다 보니 큰 건물 같은 택시 포인트가 없어서 정확한 목적지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래, 어차피 없는 택시 포인트인데, 우리 약국을 랜드마크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며칠 뒤, 택시를 이용할 일이 생겼다. 나는 택시를 잡는 순간부터 입속으로 ‘육일약국 갑시다’를 되뇌었다.
“기사님요, 육일약국 좀 가주이소.”
“육일약국요? 거가 어딘데예?”
나는 택시를 탈 때마다 일단 육일약국을 가자고 먼저 얘기하고, 거기가 어디냐고 물으면 약국의 위치를 부연 설명 했다. 그렇게 3년 정도 지났을까? 창원에서도 마산과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상남동에서 택시를 타게 되었다.
“기사님, 육일약국으로 가주이소.”
택시만 타면 입버릇처럼 나오는 말이었다. 마산도 아닌 창원에서 동네 이름도 말하지 않고 무조건 ‘육일약국을 가자’고 하다니…. ‘아차!’ 싶었다. 부연설명을 곁들이려는 순간, 기사님은 기어를 바꾸고 택시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내게 한마디 덧붙였다.
“마산, 창원에서 택시 기사 한 달하고 육일약국 모르면 간첩이라 안 합니꺼.”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작은 육일약국은, 어느덧 마산에서 가장 유명한 약국이 되어있었다. --- p.10


좋은 내용이 많았지만
참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종이나 가격이 소박했더라면 참 좋았을 껄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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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무엇을 떠올리며 읽는 버릇이 생겨서 (집중력 부족인가 -_-?)
'허삼관 매혈기'를 읽을 때는 무대에 나타나고 사라지는 배우들이 함께 했고,
'인생'을 읽을 때는 '대지'(펄벅)의 스토리텔링이 뒤섞이고,
'형제'를 읽을 때는 '녹정기'의 위소보가 뛰쳐나와 깔깔거렸다.

십 년만에 공백을 깨고 나온 소설이라 기대도 컸지만
위화의 전작에 비해 다소 실망스런 부분이 없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3권이라는 긴 호흡에는 조금 산만하다는 생각도 ...

하지만 위화라는 작가는 적어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 같다.

'형제'를 읽으면서 세대간의 역사적 간극과 빈부, 가치관, 환경에 따른 현실적 간극에 대해
사유하고 느낀 바 조금이라도 있으니 그 가치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귀가 후 컴퓨터와 티비가 없는 방 안에서도
지루하지 않게 지낼 수 있게 도와준 '이광두'에게도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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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가 들려주는 잔잔한 이야기는 언제나 우주 최강이다.

술을 마시면 새벽잠을 설치는 습관이 있어서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뒤척이다가,

에라 책이나 보자 ~ 하며 마지막 부분까지 읽어버렸다.

줄거리는 이렇다.

이야기는 농촌으로 민요를 수집하러 간 ‘나’에게 늙은 농부 푸구이가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부유한 지주의 외아들이었던 푸구이는 전문 도박꾼 룽얼에게 걸려들어 하룻밤 만에 전 재산을 잃고, 초가집에 사는 농사꾼 신세로 전락한다. 단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뀐 그날 이후 푸구이는 운명과의 장난 같은 줄다리기, 늘 끌려 다니기만 하는 불공평한 줄다리기를 시작하게 된다.
성안에 의원을 부르러 갔다가 얼떨결에 국민당군에 끌려간 그는 2년 동안 전쟁터를 전전하다가 해방을 맞아 집에 돌아온다.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딸 펑샤는 벙어리에 귀머거리가 되어 있다.
그 즈음 진행되던 토지 개혁 과정에서 자신에게 빼앗은 땅으로 부자가 되었던 룽얼이 공개 처형되자, 푸구이는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운명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1958년 인민공사가 성립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집 안의 솥까지 빼앗긴 뒤 공동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지만, 식량은 곧 바닥이 나고 홍수까지 겹쳐 최악의 기근이 찾아든다.
그 와중에도 마을에서는 강철을 만든다며 쇠붙이를 녹일 길지를 찾는데, 풍수 선생과 아내 자전의 인연으로 푸구이는 또 한 번 모든 것을 잃을 뻔한 위기를 넘긴다.
시름시름 앓던 자전은 불치병 진단을 받고 푸구이와 펑샤는 고된 노동에 지쳐갈 무렵, 아들 유칭이 출산 중인 현장 부인에게 수혈을 해주다 의사의 무지로 어처구니없이 죽고 만다. 아들을 죽게 한 현장이 옛 전우 춘성이란 걸 알게 된 푸구이는 “자네는 나한테 목숨 하나를 빚진 거라네. 다음 생에서 꼭 돌려주게나” 하며 아들을 조용히 가슴속에 묻기로 한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고, 펑샤는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신랑 얼시를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성안으로 딸 부부를 보러 갔던 푸구이는 조리돌림을 당하던 춘성을 구하지만, 얼마 후 춘성은 푸구이 부부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끊는다.
펑샤의 임신 소식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아이를 낳던 펑샤는 유칭이 죽은 바로 그 병실에서 죽음을 맞고 곧이어 자전도 훌륭한 남편, 착한 아이들과 살았던 한평생에 흡족해하며 눈을 감는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 푸구이는 다시 사위 얼시, 손자 쿠건과 오순도순 그런대로 괜찮은 일상을 꾸려간다.
그러나 착한 사위 얼시도 운반 일을 하다가 시멘트 판에 끼어 끔찍한 죽음을 맞고, 하나 남은 쿠건마저도 갑자기 콩을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허망하게 죽고 만다.

착하디 착한 아들 유칭이 출산중인 현장 부인에게 수혈을 해주다 죽는 장면은

정말 울컥해서 책을 던져버리고 싶었다.

뭐 이래 ~~~  으 ~ 젠장할 것.

해방 전후부터 약 40년간의 중국 역사를 가혹하다는 의식조차 없이

묵묵히 살아낸 중국 민초들의 삶, 푸구이의 마지막 말은 이렇다.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아버지는 내가 가문을 빛내기를 바라셨지만, 당신은 사람을 잘못 보신 게야.
나는 말일세. 바로 이런 운명이었던 거라네.
젊었을 때는 조상님이 물려준 재산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살았고, 그 뒤로는 점점 볼품없어졌지.
나는 그런 삶이 오히려 괜찮았다고 생각하네."

음 ...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내가 고상한 작품을 썼다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와 운명과의 우정을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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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책의 내용이나 부피에 상관없이

저자의 소개만으로 일독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저자인 김영갑님의 소개글을 보면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이래 20여 년 동안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1982년부터 제주도를 오르내리며 사진 작업을 하던 중 그곳에 매혹되어, 1985년 아예 섬에 정착했다. 바닷가와 중산간, 한라산과 마라도 등 섬 곳곳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또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등 그가 사진으로 찍지 않은 것은 제주도에 없는 것이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는 사진 작업은 수행이라 할 만큼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친 것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사진을 찍을 때면 셔터를 눌러야 할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이유 없이 허리에 통증이 왔다. 나중에는 카메라를 들지도, 제대로 걷지도 먹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루게릭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선 3년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다.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창고에 쌓여 곰팡이 꽃을 피우는 사진들을 위해, 또 점점 퇴화하는 근육을 놀리지 않으려고 손수 몸을 움직여 사진 갤러리를 만들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2002년 여름에 문을 열었고, 관광지 제주가 아닌 섬의 속살을 보고자 하는 이들의 발길이 매일 끊이지 않는다.

투병 생활을 한 지 5년여, 작년부터는 모든 치료를 거부한 채 생명의 자연 치유력에 의지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평화를 즐기며 갤러리를 지키고 있다.


도무지 안 읽어볼 수가 없게 만드는 소개글.

'눈으로 보아도 보이지 않고, 귀로 들어도 들리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것.
형상도 없는데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그 무엇이 중간산 광활한 초원에 존재한다.'는 말처럼

자연에게 말을 걸고 자연이 들려주는 신비한 음성을 사진에 담을 줄 아는, 
그야말로 목숨값을 다해 사진에 몰두한 이 분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책을 읽던 중간중간, 아직도 방향없이 흔들리는 내 모습이 참 부끄러웠다.

책의 마지막엔 이런 글이 있다.


시작이 혼자였으니 끝도 혼자다.
울음으로 시작된 세상, 웃음으로 끝내기 위해 하나에 몰입했다.
흙으로 돌아가, 나무가 되고 풀이 되어 꽃 피우고 열매 맺기를 희망했다.
대지의 흙은 아름다운 세상을 더 눈부시게 만드는 생명의 기운이다.
흙으로 돌아갈 줄을 아는 생명은 자기 몫의 삶에 열심이다.
만 가지 생명의 씨줄로 날줄로 어우러진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살면서도 사람들은 또 다른 이어도를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홈페이지 : http://www.dumoa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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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극한에 직면한 사람들의 생존 기록을

저널리스트 출신의 작가가 재구성한 에세이집.

알맞는 아이템 선정, 취재, 기획이 돋보이는 책이지만

12가지 이야기를 읽다보니 다소 물리는 감도 ...

 두 번 읽었다. 한 번은 미친듯이, 한 번은 찬찬히. 즉음을 유예시키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 깨어 있는 의식이라는 것을, 비슷한 과거가 있는 나는 이 책에서 다시 확인했다.
- 이윤기(소설가,순천향대 명예교수) -

찬연하고, 감동적인 기록이다. 저널리스트인 작가가 발굴해낸 삶과 생존의 신비가 프리즘처럼 빛난다. 단색화보인 우리 문학이 천연색으로 변화할 것 같은 예감이 찾아온다.
- 최인호(소설가)
-

두 대가의 평은 약간 과장되어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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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행을 마친 후 도서관에 올라갔다.

요새 관심이 가는 다석 관련 서적을 훑어볼 요량이기도 했지만,
출근을 늦추고 나를 위한 시간을 내기로 맘 먹은 이상 빠질 수 없는 코스이기도 하다.
취업하랴 시험보랴 공부에 바쁜 사람은 바지런바지런 움직이고,
나같은 곰탱이는 도서를 대여하는 열람실에 조용히 자리잡는다.
헌데 도서관에서 좀 높아 보이는 인간들이 하나둘 열람실에 모여 소리높이 떠들어댄다.
도서관에서 조용하는 건 기본 아닌가 ?
도서관에서 일하는 높은 사람이라는 것이 ... 하여간 하여간이다.
암튼 저 개자식들은 위세로 짖고 있지만 난 내 일 보러 왔을 뿐, 책을 쌓아놓고 대강 훑었다.

다석의 깊고 넓은 사상을 과연 인류가 아로 새길 지야 모르겠다만,
더군다나 내가 훑어 알아 먹을리 만무하지만,
귀일 一이라는 개념, 이거 하나를 이해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짐승의 수성이라는 탐진치(貪瞋痴)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살아서 살아 지내고
죽어서 죽어 지내야지,

살아서 죽어 지내고
죽어서 살아 지낸다면

그건 또 무언가 싶다.

한 쌍의 조상이라도 짝짓기에 실패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나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는 자리에서 온 나는,

받은 사랑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받은 그릇 고이 잘 간직하고 사용해서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갈 뿐이라 생각한다.

김영갑님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빌려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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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와 사용자가 서로에게 갖는 느낌의 차이점

-개발자가 갖는 사용자에 대한 느낌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요구사항이 없다가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나면 요구사항이 늘어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가 많다.

기술을 잘 모른다.

자신의 기존 시스템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떠넘기려 한다.

프로젝트가 완료되어가는 시점에서 관련 없는 추가주문을 한다.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개발자가 실력이 없다고 한다.

-사용자가 갖는 개발자에 대한 느낌

납기를 잘 못 맞춘다.

90% 정도 해결하고 10% 남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90%가 남아있기도 한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심각하게 일하는 것 같지 않다.

기술적인 용어만 늘어놓고 사업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에 적극적이지 않다.

실력이 없는 건지 기술적으로 무조건 안 된다고 하거나 오래 걸린다고 한다.


역지사지의 입장이라는 것은 요즘 내가 가장 주의를 기울이는 분야다.
인간은 논리적이라기 보다 감정적이고 이기적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편이랄까 ...

동물로 치자면 비교적 아주 긴 세월동안(대략 30년?) 보호를 받아야하는 인간은
다른 이의 관심과 애정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누구나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이 중요하지 네 입장이나 네 사정을 들으려고 앉아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가장 가까운 사이 - 가족, 연인, 친구 - 가 아닌 사업적인 관계나 사회에서 만난 사이에는 더욱 그렇다는 것.

내 화법이나 시야의 편협함을 인정해가고 있는 듯하다.

'대한민국 개발자 희망보고서'는 토종 개발자의 입장에서 요모조모 살펴본 내용이라
구구절절 공감이 가고 필요한 부분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 정서에 맞는 부분도 많고 ...

게중 말토시 하나하나 가슴에 와 박히는 말들은 위의 내용이다.
어쩜 저리들 똑같은지 ... ㅎㅎ

상대방이 가장 원하는 것, 그것을 경청하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너라면 ...' 하는 시야를 바닥에 두고 대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원하고 관심있는 것을 충족시켜준다면
상대방도 내가 원하고 관심있는 것을 충족시켜준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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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는 돈을 아까워해서는 안되겠지만 요즘 책값이 약간 부담스럽다 느끼는 경우가 많고, 한 번 읽고 다시는 펴보지 않을 책을 사들여 쌓아두는 것도 만만치 않아 집 가까운 시립도서관을 자주 들러봅니다. 새로 나온 여러 분야의 책, 더이상 찍어내지 않는 오래된 책을 찾아보기에 큰 불편이 없고 그만 하면 산책로에도 부족함이 없는지라 세금 내는 보람이 있군 하는 생각을 ...

그런데 보고 싶은 책이 대출중이거나 대출기간을 지나 반납하지 않는 친구들이 종종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도서검색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꼭 급하게 볼 필요도 없으면서 저는 왜 이리 안달이 나서 퉁얼퉁얼대는지 ... 먹지도 않을 먹거리를, 금방 놀다 싫증낼 장남감을 사달라는 어린놈같은 모냥입니다.

여럿 회사 그만 두게했다는 이 책, '가슴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라'는 그런 이유로 조바심이 나서 서성대다 서점에 나가 당장 사온 책입니다.

처세/경영 어쩌구 이름 지어진 코너에 꽂힌 책들은 다 뻔하다고 느끼는, 하기 어려운 거 꼭 하라구 하구 이래라 저래라 말장난 같다는 인식이 있기는 했지만 자기계발서 종류를 읽어보면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고, 무언가 균형을 잡아보려는 시도를 하게 되어 가끔 눈이 가게 됩니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했지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중한 때가 있었던가 ?
재능과 기술이 없더라도 의욕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그런 일이 있었던가 ?

어릴 적 기억부터 거슬러 그런 물음에 대해 떠오르는 것을 노트에 쭉 적어보았습니다.

정말 이런 것을 하고 살면 행복하겠다, 요렇게 저렇게 살면 참 신나겠다, 하는 상상속에
컴터 앞 의자에 비스듬이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음 ... 이런 것두 좋아하는군. 상상놀이.

꿈을 이루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지 못하는 제일 큰 이유는 돈이라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큰 돈이 있으면 이래저래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할 수 있고, 시간두 나니까 ...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살 수 있을꺼야, 하고 ...

뭐 많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꿈을 이룬다는 것은 사치품이 아니고,
재능과 기술이 중요하지 않은, 마음속에 열정이 있으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명하지 말고 작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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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읽은
혼자 빙긋 웃다가 가슴 짠해 슬퍼하기도 하고 ...

오랫만에 정성들여 읽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중에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옮깁니다.


이날 밤, 식구들이 모두 침대에 누워 있을 때 허삼관이 아들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먹는 거라는 거 나도 안다. 밥에다 기름에 볶은 반찬 ...... 고기며 생선이며 하는 것들이 먹고 싶겠지. 오늘이 내 생일이니까 너희들도 같이 즐거워야겠지. 설탕을 먹었어도 뭔가 또 먹고 싶다는 거 내 안다. 뭐가 또 먹고 싶으냐 ? 까짓 내 생일인데 내가 조금 봉사하지. 내가 말로 각자에게 요리 한 접시씩을 만들어 줄 테니 너희들 잘 들어라. 절대 말을 하거나 입을 열면 안 된다. 입을 열면 방귀도 못 먹는다구. 자 다들 귀를 쫑긋이 세우고. 그럼 요리를 시작하지. 뭘 먹고 싶은지 주문부터 해야지. 하나씩 하나씩, 삼락이부터 시작해라. 삼락아 뭘 먹고 싶니?"

"옥수수죽은 다시는 마시고 싶지 않아요. 밥을 먹고 싶어요."

"밥은 있는 걸로 하고, 요리 말이다."

"고기요."

"삼락이는 고기가 먹고 싶단 말이지. 자 그러면 삼락이에게는 홍소육 한 접시다. 고기에는 비계하고 살코기가 있는데, 홍소육이면 반반 섞인 게 제일 적당하지. 껍데기째로 말이야. 먼저 고기를 썰어서 손가락만큼 굵게, 손바닥 반만큼 크게 ...... 삼락이에게는 세 조각을 ......"

"아버지, 네 개 주세요."

"그럼 삼락이에게는 고기를 네 조각 썰어서 ......"

"아버지, 하나만 더 썰어 주세요."

"넌 네 개만 먹어도 배가 꽉 찰 거야. 너 같은 꼬마가 다섯 개를 먹으면 배 터져 죽는다구. 자 우선 고기를 끓는 물 속에 넣고 익히는데, 이때 너무 익히면 안 돼요. 고기가 익으면 꺼내서 식힌 다음 기름에 한 번 볶아서 간장을 넣고, 오향을 뿌리고, 황주를 살짝 넣고, 다시 물을 넣은 다음 약한 불로 천천히 곤다 이거야. 두 시간 정도 고아서 물이 거의 쫄았을 때쯤 ...... 자 홍소육이 다 됐습니다. "

허삼관은 아이들의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뚜껑을 여니 고기 냄새가 코를 찌르는구나. 자 젓가락을 들고 고기 한 점 집어 입에 넣고 ......"

허삼관은 침 삼키는 소리가 갈수록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삼락이 혼자 삼키는 소린가 ? 내 귀에는 아주 크게 들리는 것이 일락이, 이락이도 침을 삼키는 것 같은데? 당신도 침을 삼키는구먼. 잘 들으라구. 이 요리는 삼락이한테만 주는 거라구. 삼락이만 침을 삼키는 것을 허락하겠어. 만약 다른 사람이 침을 삼키면 그건 삼락이의 홍소육을 훔쳐먹는 거라구. 다른 사람들 요리는 나중에 만들어 줄 테니까 그러지들 말라구. 먼저 삼락이가 먹게 하고, 나머지 사람들 요리는 따로 만들어 줄게. 삼락이 잘 들어라 ...... 한 점을 입에 넣고 씹으니까 맛이 어떠니? 비계는 느끼하지 않고, 살코기는 보들보들한 것이 ...... 내가 왜 약한 불로 곤 건지 아니 ? 맛이 완전히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야. 삼락이의 홍소육은 ...... 삼락아, 천천히 먹도록 해라. 자 다음은 이락이. 넌 뭘 먹고 싶니 ?"

"저도 홍소육요. 전 다섯 개 썰어 주세요."

"좋았어. 이락이에게는 다섯 점을 썰어서 살코기와 비계를 반반으로, 물에 넣고 삶은 다음, 식혀서 다시 ......"

"아버지, 형하고 삼락이가 침 삼켜요."

"일락아."

허삼관이 꾸짖었다.

"아직 네가 침 삼킬 차례가 아니잖아."

그러고는 요리를 계속했다.

"이락이 고기 다섯 점을 기름에 볶아서, 간장을 뿌리고, 오향을 ......"

"아버지, 삼락이가 아직도 침을 삼켜요."

"삼락이가 침 삼키는 건 자기 고기를 먹는 거야. 네 고기가 아니잖아. 네 고기는 아직 다 안 됐잖니 ......"

허삼관은 이락이의 홍소육을 만들어 준 다음 일락이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일락이는 뭘 먹을래 ?"

"홍소육요."

허삼관은 기분이 약간 상했다.

"세 놈이 죄다 홍소육을 먹겠다니 ...... 왜 좀더 일찍 말하지 않고. 일찍 말했으면 한꺼번에 만들잖아. 그러면 한 번에 끝나고 ...... 자, 그럼 일락이에게 고기 다섯 점을 썰어서 ......"

"전 여섯 점 주세요."

"일락이에게는 여섯 점을 썰어서, 고기와 비계를 반반으로 ......"

"고기는 빼 주세요. 전부 비계로 해 주세요."

"반반으로 해야 맛있는 거야."

"전 비계만 먹고 싶어요. 고기에 살이 하나도 없는 걸로 먹고 싶어요."

이락이와 삼락이도 함께 소리쳤다.

"우리도 비계를 먹고 싶어요."

허삼관은 일락이에게 비계로 된 홍소육을 만들어 준 뒤 허옥란에게 붕어찜을 요리해 주었다. 붕어에다 훈제 고기, 생강, 버섯을 함께 넣어 소금을 살짝 바르고 황주를 뿌린 뒤 잘게 썬 파를 얹어서 한 시간 정도 익힌 후에 뚜껑을 여니 맑은 향기가 방 안에 가득히 ......
허삼관이 눈에 선하게 만들어 낸 붕어찜은 방 안 가득히 침 넘어가는 소리를 자아냈다. 그러자 허삼관이 아들들을 꾸짖었다.

"이건 너희 엄마를 위해서 만든 건데, 너희들은 침을 왜 삼켜? 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었으면 이젠 자도록 해라."

마지막으로 허삼관은 자기가 먹을 돼지간볶음을 만들었다.

"돼지 간을 먼저 잘게 썰어서, 아주 작게 썰어 가지고 사발에 우선 담은 다음, 소금을 뿌리고 얼레짓가루를 입힌다고. 얼레짓가루가 돼지 간을 신선하게 유지시켜 주거든. 그 다음에 황주 반 잔을 뿌리는데, 황주는 돼지 간 냄새를 없애 준다고. 그리고 파를 잘게 썰어 얹고나서 솥의 기름이 충분히 데워져 김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돼지 간을 기름에 넣고 한 번, 두 번, 세 번 뒤집어 ......"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

일락, 이락, 삼락이가 허삼관을 따라서 계속 볶아 대자 허삼관이 아들들을 말렸다.

"안 돼. 세 번만 뒤집으면 된다구. 네 번부터는 굳어진단 말이야. 다섯 번부터는 질겨져서 여섯 번 볶으면 이젠 씹을 수조차 없게 된다구. 세 번만에 간을 끄집어 내서 천천히 먹기 시작한단 말씀이야. 황주 두 냥을 따라서 먼저 한 모금 마시면, 술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갈 때 뜨거운 기운이 확 느껴지는 게 마치 뜨거운 수건으로 얼굴을 씻을 때처럼 후끈하단 말씀이야. 에에, 이 황주는 또 장을 깨끗이 씻어 주는 역할을 하지. 그러고 나서 젓가락을 들어 돼지 간 한 점을 집어다가 입에 넣고 ...... 카, 이게 바로 신선놀음이로구나 ......"

방 안은 군침 도는 소리로 가득했다.

"이 돼지간볶음은 내 요리다.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 그리고 당신까지 다들 내 요리를 훔쳐먹고 있는 거라구."

허삼관이 기분 좋게 큰소리로 웃어 댔다.

"그래,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 자, 다들 내 돼지간볶음 맛을 보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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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에게 읽힐 수 있는 문장이라면
예전의 나는 대충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자 역겨운 느낌이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갑작스럽고 무의식적인 반응, 급격하게 솟구치는 메스꺼움이었다. 나는 내가 그런 것들을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모두 거부했다. 내가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고의로 버린다는 것을 익히 알면서도 완강하게, 경멸하듯 그런 것들을 거부했다. 그때부터 나는 실제로 나 자신을 돕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손가락 하나 꼼짝하려고 들지 않았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 당시에 나는 셀수도 없이 많은 이유를 꾸며 냈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그것은 절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절망감에 빠져 있었고, 그처럼 큰 격변에 직면해서 어떤 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세상에 침을 뱉고 싶었다. 할 수 있는 가장 무모한 짓을 하고 싶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너무 많은 책을 읽은 젊은이의 모든 열정과 이상으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결정했다. 내 행동은 여하한 행동도 취하지 않으려는 투쟁적인 거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심미적인 목적으로까지 고양된 허무주의였다. 나는 내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 셈이었다. 절묘한 패로독스로 나 자신을 희생시킴으로써 내가 들이쉬는 모든 숨결로 나 자신의 운명을 음미하는 법을 배울 셈이었다.-폴 오스터, 달의 궁전 중에서


그런 우스운 어린 시절로부터
참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의 나는 자라고 있는 것일까 ?
나는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

숙취인지, 밤샘의 곤함인지 잘 모르겠지만
멍한 상태에서 폴 오스터, 달의 궁전을 뽑아들고
한 장 한 장 읽어 나갔다.

폴 오스터의 출간된 책은 다 읽은 것 같은데
그 내용이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하다.

나는 한 번 읽고 두 번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을 잘 버리는 편인데,
두 번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은 한 번도 읽을 필요가 없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정리정돈이 필요한 것 같다.
내 주위의 모든 것,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정리정돈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자라고 있는 것일까 ?
나는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
Posted by 웅~ 트랙백 0 : 댓글 2